AI가 만든 새로운 빈부격차 | 알고리즘 자본주의의 시대
2025년의 세계는 인공지능이 경제의 중심이 된 시대다. AI는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을 높였고, 인간의 생활을 간소화했으며, 데이터는 이제 새로운 자원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AI는 기존의 불평등을 재편하고, 그 격차를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과거의 빈부격차가 토지, 자본, 노동력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면, 이제의 격차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접근권에서 발생한다. 데이터를 소유한 집단은 시장을 예측하고, 개인의 행동을 설계하며, 부를 자동으로 축적한다. 반면 데이터를 제공하는 개인은 플랫폼의 피드백 안에서 소비자로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경제의 근본적 질서를 바꾼다. AI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동시에, 인간의 시간을 데이터로 전환하고, 감정을 상품화한다. 이 현상을 경제학자 슈메이터는 ‘디지털 자본의 내면화’라고 표현했다. 즉, 인간은 이제 노동자가 아니라, 데이터 공급자이자 알고리즘의 재료가 되어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새로운 빈부격차를 형성하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개인과 사회의 미래에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치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데이터가 자본이 되는 시대
21세기 자본주의의 핵심은 ‘소유’가 아니라 ‘접근’이다. 산업혁명 시대의 자본은 토지와 공장이었고, 20세기 금융자본주의의 자본은 화폐였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은 데이터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데이터를 많이 보유한 집단이 더 강력한 예측력과 시장 통제력을 가진다. 문제는 이 데이터의 축적 구조가 극도로 불균형하다는 점이다. 개인은 스마트폰, SNS, 검색, 쇼핑, 위치 정보 등을 통해 매일 방대한 데이터를 생산하지만, 그 데이터의 실제 소유권은 플랫폼에 있다. 구글, 메타, 아마존, 네이버 같은 초대형 기술기업은 이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예측 모델을 학습시켜 광고, 추천, 가격 결정 등 모든 시장 행위를 자동화한다. 즉, 개인의 정보가 기업의 수익 구조 안으로 들어가면서 개인은 데이터의 생산자이지만 동시에 소비자가 된다. 이런 구조는 ‘데이터 자본주의(Data Capitalism)’의 전형적 형태다.
경제학적으로 데이터는 한 번 생성되면 무한히 복제 가능하고, 한 번 학습되면 자산처럼 축적된다. 따라서 초기 데이터 축적에 성공한 기업은 이후 시장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이른바 ‘규모의 복리(compounding of scale)’가 작동한다. 전 세계 웹 트래픽의 83% 이상이 10개 미만의 플랫폼에서 발생한다는 통계는 이런 집중의 극단을 보여준다. AI 학습의 원료인 데이터가 특정 기업에 집중되면, 인공지능이 만드는 결과물도 특정 계층에 유리하게 작동한다. 예를 들어, 금융권의 신용평가 모델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의 신용 이력을 축적할 기회를 박탈한다. 교육 알고리즘 또한 비슷한 구조로 작동한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 ‘성취 가능성 점수’를 산출할 때, 데이터 접근성이 높은 학생이 유리한 결과를 얻는다. 결국 데이터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그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데이터는 현대의 토지와 같다. 과거 부자는 땅을 소유했지만, 지금의 부자는 정보를 소유한다. 토지가 생산의 공간이었다면, 데이터는 가치 창출의 재료다.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은 시장의 흐름을 예측할 수 없고, 소비의 대상이 된다. 정보의 비대칭이 다시 한 번 경제적 불평등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중립적이지 않다
AI의 의사결정은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데이터를 학습하기 때문에 사회의 편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알고리즘은 과거의 불평등을 미래로 복제한다. 채용 알고리즘의 예를 보자. 미국의 한 글로벌 기업은 AI 채용 도구를 도입했다가, 여성 지원자의 선발 확률이 남성보다 30% 낮게 나왔다는 이유로 시스템을 폐기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AI가 학습한 과거 데이터에 남성 중심의 인사 패턴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데이터의 거울’이지만, 동시에 ‘편향의 증폭기’이기도 하다.
금융권의 신용평가 알고리즘도 마찬가지다. 대출 기록이 없는 사람은 ‘리스크가 높은 고객’으로 분류되고, 그로 인해 대출 기회를 잃는다. 이 과정에서 신용이 없는 사람은 계속 신용을 쌓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부의 축적은 특정 계층에 집중된다. 이러한 구조는 ‘데이터 피드백 루프(Data Feedback Loop)’라고 불린다. 한번 형성된 편향이 알고리즘을 통해 자동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AI의 추천 시스템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유튜브, 틱톡, 네이버, 아마존 등의 추천 엔진은 사용자의 관심사에 따라 콘텐츠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수익 극대화 구조에 맞춰 최적화되어 있다. 추천 알고리즘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소비’를 유도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알고리즘의 설계 안에서 행동한다. 이렇게 형성된 ‘디지털 생태계’는 사회의 계급 구조를 재생산한다. 정보 접근성이 높은 집단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지만, 정보 제공자 다수는 그 결과를 소비하는 데 그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의 재편이다. 과거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플랫폼이 ‘생산 알고리즘’을 지배한다. 알고리즘은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 판단 기준을 바꾸는 장치가 되었다. 기술이 경제적 중립성을 상실하는 순간, 시장은 공정성을 잃는다.
AI가 만든 새로운 계급
AI의 확산은 인간의 노동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 과거 노동은 ‘시간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행위’였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은 ‘데이터를 제공하고 보상을 받지 못하는 행위’가 되었다. 개인은 SNS에서 글을 쓰고, 동영상을 올리며, 리뷰를 남긴다. 이 모든 행위가 AI의 학습 재료가 된다. 즉, 개인의 일상이 데이터로 변환되어 플랫폼의 자산으로 축적된다. 사용자는 자신이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AI에게 데이터를 공급하는 노동자가 된다.
이 구조는 ‘감정 자본주의(Emotional Capitalism)’의 형태를 띤다. 알고리즘은 사람의 감정과 반응을 분석해 더 강한 자극을 제공하고, 더 오랜 체류 시간을 유도한다. 개인의 감정은 플랫폼의 수익을 위한 원료가 된다. SNS의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불안, 분노, 호기심을 활용해 참여를 유도하고, 그 데이터를 다시 학습시켜 더 정교한 자극을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은 자본의 순환 고리 속으로 흡수된다.
노동시장에서도 격차는 심화된다. AI 활용 역량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산성 차이가 급격히 벌어진다. 2025년 기준, AI 기반 업무 자동화 도구를 사용하는 직장인의 월평균 소득은 비사용자보다 1.9배 높았다. 특히 비즈니스 분석, 콘텐츠 기획, 디자인, 코딩 분야에서 그 차이는 두드러졌다. AI를 다루는 능력은 새로운 형태의 학력이며, 디지털 자산이다. 반면, 단순 반복형 노동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자영업, 행정, 단순 제조, 콜센터 업무 등에서 AI 자동화가 급속히 확산되며, ‘기술 활용 능력’이 소득 계층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생산성을 높이고 시간을 절약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기술에 종속된다. 기술은 인간을 해방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통제한다. AI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 시간을 줄였지만, 인간의 주의력(attention)을 더 깊이 점유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화면 앞에서 보내며, 데이터 생산자로 살아간다. 결국 AI는 인간의 시간을 수익 모델의 일부로 전환시켰다.
결론
AI의 발전은 인류에게 혁신적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어냈다. 과거의 부는 자본이 축적되며 형성됐고, 지금의 부는 데이터가 축적되며 형성된다. 인공지능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것을 설계하고 통제하는 집단의 이해를 반영한다. 알고리즘 자본주의의 본질은 효율이 아니라 통제다. 데이터를 독점한 기업은 개인의 소비, 신용, 감정, 시간까지 예측 가능한 수익 구조로 만들었다. 이러한 시대에 진정한 경쟁력은 더 많이 일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는 능력이다.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은 종속되고, 데이터를 해석하고 설계하는 사람은 주체가 된다. 부의 불균형은 소득이 아니라 정보 해석 능력에서 시작된다. 기술을 단순히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에 의해 사용될 것인가는 개인의 태도에 달려 있다. AI는 인간을 대신할 수 있지만, 인간의 ‘판단’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간이 기술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알고리즘 자본주의의 시대에 진정한 자유는 빠르게 움직이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를 자각하고, 스스로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결국 부는 기술이 아니라 사고의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느리게 사고하는 사람이야말로, 알고리즘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부를 쌓는 사람이다.
